Page 16 고등학교 미술 감상과 비평 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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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자체에 대한 인식이나 창작에 대한 태도도 새롭게 제시되었으며,
표현 기법도 남종화법을 통해 기존의 화풍을 쇄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원근법이나 음영법 같은 서양화법
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였다. 주제에서도 주변 산천의 실경을 그린
진경산수화와 각 계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풍속화가 널
리 유행하였다.

(1) 회화
① 산수화: 몽유도원도(안견), 인왕제색도(정선)
공민왕(1330~1374) 천산대렵도(비단 ② 인물화: 달마도(김명국), 자화상(윤두서)
에 수묵 채색/21.8×24.5㎝/14세기 중
엽) ③ 풍속화: 씨름도, 서당도(김홍도), 단오풍정(신윤복), 파적도
(심사정)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④ 초충도: 가지와 방아깨비(신사임당)
고려가 원나라의 침략에 맞서 종교적인 염원으로 만든 불 ⑤ 민화: 까치 호랑이, 십장생도, 책거리그림
교 목판경이다. 고려 현종 때에 초조(初雕)대장경이 만들어
(2) 조소: 장승 조각
졌으나 몽골의 침공으로 불타 없어졌다. 이후, 선종 때에 대
각국사 의천이 속장경을 간행하였으나 이 또한 몽골의 침공 (3) 건축: 궁궐(경복궁, 창덕궁), 성곽(북한산성, 남한산성, 수원
으로 불타 없어졌다. 고종 24년인 1237년부터 16년간에 걸 화성), 불탑(원각사지 10층 석탑, 법주사 팔상전)
쳐 고려에 침입한 몽골의 침공을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치기
(4) 공예: 분청사기, 백자, 목공예, 나전 칠기, 화각 공예
위하여 강화에서 조판되었다. 1398년 경상남도 합천 해인사
로 옮겨져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데, 세계의 대장경 중에서 •진경산수화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는 한국적인 특성을 가장 잘 드
인사 장경판전은 1995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 러낸 산수화이다. 진경산수화가 나타나기 이전에는 관념적
정되었다. 이고 이상화된 산수를 그리는 경향이 강했다. 진경산수화는
우리나라 산천을 실제로 그렸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
니라 화가가 직접 우리의 산천을 여행하며 살펴본 실경을
독창적인 화풍으로 표현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 아래에 있던 조선 화단은 겸재 정선의 등장으
로 우리 산천의 발견과 독창적인 제작 방법이 뿌리를 내리
게 된다. 이러한 화풍이 발전하게 된 배경은 조선 중기 이후
조선의 고유색을 찾으려는 화가들의 노력과 남종화가 본격
적으로 유행하게 된 점, 서양화법이 전래되어 어느 정도 수
용되기 시작하였던 점 등을 들 수 있다.



팔만대장경(목판/24×69㎝/11~12세기/고려 /국보 제32호/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5. 조선 시대

조선 시대(1392~1910년)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불교 미술이 쇠퇴하고, 유교의 숭문천기(崇文賤技) 사상으로 고
려 시대에 발달했던 각종 공예 기술이 쇠퇴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도자기 공예는 고려청자의 뛰어난 전통이 초기의 분청사기(粉靑
沙器)를 거쳐 백자로 이어졌으나 18~19세기에 기술 개발을 통한
산업화로의 전환을 이루지 못한 채 쇠퇴하였다. 반면, 궁궐, 성곽,
향교, 건축, 회화 등이 발달하였고, 15~16세기에는 사대부 중심,
즉 지배 계급 위주의 성격이 강했으며, 17~18세기에 이르러 장인
들이 등장과 함께 다양한 예술 형식이 추구되었다. 조선 후기에
양반 사대부를 중심으로 전개된 시·서·화를 향유하는 풍조가
저변화되면서 그림을 그리고, 감상하고, 품평하고, 소장하는 등의
정선(조선/1676~1759) 금강내산총도(비단에 수묵 담채/36.0×37.4㎝/1711년 작)
회화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의해 그림


104 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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