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고등학교 미술 감상과 비평 지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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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장승업(조선/1843~1897) 호취도(종이에 수묵 담채/135.4×55.8㎝/19
세기 후반)
강희안(조선/1419~1464) 고사관수도(종이에 수묵/23.4×15.7㎝/15세기)
원래 글을 읽거나 쓰지도 못하던 장승업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
강희안은 조선 전기의 대표적 문인 화가로 시 ·서 ·화에 모두 능
의고 떠돌다 머슴살이하던 양반집에서 집주인의 그림을 어깨너머
통하여 ‘시서화의 삼절(三絶)’로 불리었다. 팔을 구부려 턱을 괴
로 배우게 되었고, 그의 보살핌으로 화가로서 이름을 날리게 되었
고 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 선비의 모습으로 물이 가
다. 술과 여자가 없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진 다양한 속성에 대해 고찰하는 고사(高士: 인격이 고결한 선비)
만큼 호방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의 작품은 격조가 높다기
를 나타내고 있다. 당시 큰 자연 속 작은 인간을 그리며 겸손함을
보다는 기량이 뛰어나고 감각적인 면에서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표현했던 중국 명나라 화풍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호취도는 몸을 틀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나뭇가지 위의 독수리와
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로서 중기의 절파화풍에 대단히 큰 영향을
시선을 위로 향하며 쉬고 있는 아래의 독수리가 함께 섬뜩한 생동
끼쳤지만 자신의 그림이 후대에 남는 것을 굴욕적으로 생각했다는
감을 주는 작품으로 국운이 다한 조선에 열강들이 달려들던 시대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림 그리는 일에 대한 당시의 사회
상황과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조선의 저항을 활기차고 생명
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력이 넘치는 독수리로 나타내었다는 평을 듣는 고목의 묘사에 더
조속(조선/1595~1668) 고매서작(종이에 수묵/100×55.5㎝/17세기) 해진 대담한 묵법과 바위, 대나무, 나뭇잎 들의 표현에 보이는 장식
늙은 매화에 앉은 상서로운 까치라는 뜻의 고매서작(紙本水墨) 성 높은 설채법이 좋은 대조를 보인다.
은 조속의 삶과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광해군 제위 시 나전 칠기 큰상(조선 시대)
절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인 나전 칠기는 고려 시대부터 만들어졌으며 조개나 전복껍데기로
조반정에 참여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정치와 권력을 버리고 자 장식한 가구에 여러 차례 옻칠과 건조를 반복해 제작한다. 옻은
연을 벗삼아 전국을 유랑하며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그리며 여 살균과 방부의 기능이 있어 내구성이 뛰어나다. 학, 봉황, 복숭아
생을 보냈다. 늙은 매화나무에 새로운 봉우리가 싹트는 모습에서 무늬가 새겨진 큰상은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
새로운 봄을 기다리는 상황이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까치의 모습 으며 조선 후기에 제작된 나전 칠기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다양
과 어우러져 희망을 극대화하고 있다. 담묵으로 표현된 매화와 달 한 무늬들이 조화롭게 배열되었고 정갈한 화려함을 보여 준다.
리 진한 먹으로 선명하게 표현된 까치의 모습은 경탄을 자아낸다.
검은 깃털과 흰 깃털의 질감을 몇 번의 붓질로 만들어낸 그 감각
자연을 함께 표현한 풍속과 해학 36쪽
과 필치는 놀라우리만치 정교하며, 묵직함이 느껴지는 까치의 눈빛
은 희망에 대한 기다림과 함께 세속을 버리고 자연을 유람하며 살
풍속화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을까?
아간 조속의 정신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지도 방법 시대별로 대표적인 풍속화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스스로
강세황(조선/1713~1791) 영통동구도(종이에 수묵 담채/32.8×53.4㎝/ 알아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 풍속화를 살펴보면 그 당시의 생활 환
18세기) 경과 문화 등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 화가들이 아닌 일반
대중이 제작한 다양한 형식의 익살스러운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강세황이 송도(현 개성)와 북쪽의 여러 명산을 여행하며 그린
고급문화를 넘어서 발전하는 대중문화의 씨앗인 민화의 의의를 스
화첩인 『송도기행첩』 중 일곱 번째 그림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 쓴
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영통동 입구에 커다란 돌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크기가 집채만
하고 푸른 이끼가 덮여 있어 얼핏 보면 눈을 놀라게 한다.”는 글에
서 보이는 형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당시 유행했던 서양 작품 해설
화의 음영법과 원근법을 적용하여 표현한 흔적이 보인다. 바위의 신윤복(조선/1758~?) 단오풍정(종이에 채색/28.2×35.2㎝/18세기 후반)
선염법(渲染法)은 원근 개념을 부여한 미점(米點)의 산악 표현과 단옷날 그네를 타러 나온 여인네들이 시냇가에 그네를 매고 냇물
대조적으로 담채와 담먹을 묽게 혼용하여 입체감을 나타내었다. 에 몸을 씻으며 즐기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큰 타래 머리의 여인
들과 개울가에서 목욕하는 반라(半裸)의 여인들, 그리고 바위틈으
김정희(조선/1786~1856) 세한도(종이에 수묵/23×108.3㎝/1884년 작)
로 숨어서 넘겨다보는 승려의 모습 등이 대담하게 그려져 있다. 서
1844년은 추사 김정희가 환갑을 바라보며 5년째 제주도에서 유
민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다루었던 김홍도와 달리 신윤복은
배 생활을 하던 때였고 당시 잘 나가던 옛 제자인 이상적이 중국
양반들의 풍류와 남녀 간의 유희를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은
에서 구해 온 귀한 서적을 날개 꺾인 스승에게 보내온 해였다. “한
밀하게 다루었다. 화풍을 비교해 보면 김홍도가 배경을 그리지 않고
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인물 위주의 압축적인 화면을 구성했지만 신윤복은 등장인물과 어
알 수 있다.”는 공자의 말씀을 인용해 제목을 ‘세한도’라고 짓고 외
우러진 배경을 첨가하여 인물의 심리를 더욱 잘 드러냈다.
로운 자신의 처지와 제자에 대한 고마움을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황량한 배경에 그려진 초라한 집은 자신의 현 상황을 나타내며 제 묘주도(안악 3호분 벽화/357년경/삼국 시대 고구려)
일 우측에 그려진 늙은 소나무는 추사 자신의 모습이다. 바로 그 고대 무덤 안 벽에 그린 그림으로 죽은 이의 내세를 위해 만들
옆에 집을 지탱하며 늙은 소나무를 보필하고 있는 소나무가 제자 어졌다. 무덤 천장에는 하늘 세계와 관련된 형상을, 둘레에는 무
이상적을 나타낸 것이라고 추측된다. 제일 왼쪽 잣나무 두 그루는 덤 주인의 살았을 때의 생활 모습을 함께 그려 넣어 당시의 풍속
희망을 나타내고 있다. 작품에 시각적인 효과와 기법만을 강조한 을 엿볼 수 있다. 색조는 대부분 어둡고, 평면적으로 표현했으며 중
전문화가의 작품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강조한 문인화의 백미라고 요한 사람일수록 크게 나타냈다. 고구려 귀족의 생활 풍속을 엿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96 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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