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고 윤리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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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와 한국의 고유 사상은 어떻게 융합하였는가?

한국 도교의 성립과 발전 도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삼국 시대이다. 기록
에 의하면 고구려의 영류왕 때 당나라로부터 도교가 처음 전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단군이 신선이 되었다고 하는 단군신화나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신선 등의

예로 볼 때 삼국 시대 이전에도 도교적 요소는 우리의 고유문화에 많이 담겨 있었 05
다. 요컨대 한국 도교는 우리의 고유문화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도교적 요소에 후
대에 전래된 중국 도교가 융합하여 성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삼국 시대 이후 통일 신라 시대와 불교를 숭상한 고려 시대에도 도교가 크게 성행
하지는 못하였다. 다만 고려 예종 때 송나라에서 도교를 수입하여 도관으로 복원궁

(福源宮)을 건립하고, 도교 의식인 초제를 거행하기도 하였다. 10

조선 시대에도 유교를 국교로 삼았기 때문에 도교가 성행하지는 못하였다. 복원
궁이 폐지되고 도관으로는 소격서만 남아 있다가 이마저도 임진왜란 이후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후 도교는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지만 민간에서까지 없어
진 것은 아니며, 여러 민간 신앙과 융합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한국 고유 사상과의 융합 도교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민간에서는 권선징악(勸 15
善懲惡)의 내용을 담은 권선서(勸善書)가 유행하였다. 권선은 착한 일을 권하고 실
▲ 백제 금동 대향로(국립부여박물
천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신선이 되기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착한
관 소장) 백제의 공예 기술을 보
여 주는 작품으로 향로의 윗부분 일을 하여 복을 받는다는 신앙으로서의 성격이 강하였다.
은 신선이 사는 도교의 이상 세
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한편, 도교의 신앙이 민간에서도 받아들여져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의 민간
신앙에서 보편적으로 숭배되었던 도교 관련 신앙으로는 옥황상제(玉皇上帝), 성황 20
✽초제(醮祭) 신(城隍神), 칠성신(七星神), 조왕신( 王神) 등을 들 수 있다.
국가와 왕실의 재앙을 없애고
먼저 착한 일을 권하고 악한 일을 징벌하는 옥황상제는 하늘의 최고 통치자로 우
복을 기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늘에 제사 지내는 도교 의식 리의 행위를 평가하여 상과 벌을 내리는 존재이다. 성황신은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
이다.
에 자리 잡고 있는 신당(神堂)에서 숭배하는 신인데, 이 신당을 성황당 혹은 서낭당
✽풍수지리 사상 이라고도 부른다. 칠성신은 무속 신앙에서도 중시되고 있는 신인데, 민간에서는 자 25
풍수상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식 낳기를 빌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위해 이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조왕신은 민가의
야 자손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국가의 도읍은 물론 부엌에서 주부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는 신이다. 주부들은 매일 아침 조왕신에게 정
이고 민간에서도 집터를 정하거
화수를 올리고 기원을 드리기도 하였다.
나 묘를 쓸 때 풍수지리에 따랐
다. 이러한 신앙은 중국 도교와 한국 고유의 민간 신앙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도교는 개인의 소원이나 공동체의 발전을 기원하고 나쁜 기운을 30
물리치고자 하는 민간 신앙과 융합하여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편, 인간의 길흉화복이 자연의 기운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 풍수지리 사상도 도

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 새롭게 등장한 동학과 증산교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 신흥 종교에 등장하는 교리나 주문 등에도 도교의 영향
을 찾아볼 수 있다. 35

82 Ⅱ. 동양과 한국 윤리 사상







윤리와사상제출본.indb 82 2018-08-06 오전 11: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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